계사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희 다산복지재단과 함께 하시는 이웃, 후원자, 자원봉사자 그리고 직원 여러분의 가정에 신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1995년에 첫 발자국을 띈 저희 다산복지재단도 올해 17살로 가장 왕성하게 도약할 청소년기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환갑을 5년 남겨둔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피울 때입니다.
새날 새해는 꿈으로 부풀어 즐거워야 할 텐데 지난 연말부터 시베리아 한파로 우리 어려운 이웃들의 삶에 얼마나 고통을 줄까 걱정이 앞섭니다. 또 이 한파가 이번 겨울 내내 자리한다고 하는 기상대의 예보를 들으면 마음이 퍽 무겁습니다.
우리 다산복지재단 직원 여러분, 다른 일은 미루더라도 이번 한파로 고된 삶을 사시는 이웃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합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제 의도와는 관계없이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동료 장애인들을 위해 일한다는 이야기로 제가 포장되어질 때마다 큰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한창 발랄할 청소년기에 사회복지를 전공하겠다고 오는 청소년 자원봉사자들, 또 일반 젊은이들과 다르게 복지 현장으로 뛰어든 직원들을 볼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신선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제가 지금처럼 눈이 보이지 않고 일반인이었다면 과연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을까 자문해봅니다. 제가 사회복지를 시작한 것은 타인을 위한 봉사정신에서가 아니라 제가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불편한 점 그리고 불이익을 당한 점들을 타인이 해결해 주지 않아 제 스스로가 해결하다 보니, 이러한 생활의 연속이 사회복지와 연결선상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복지사가 되었고, 사회복지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특히 신입직원들을 만나 첫인사를 할 때면 향기로운 장미를 바라보는 기분입니다.
20대 초반 보잘 것 없는 맹인 청년으로 세상이 철장처럼 짓누르기만 하던 시절 목도 가누기 힘든 소녀가 병상에서 책을 녹음하여 준 선물을 받았을 때 세상을 달리 봤고 그 소녀의 뜻에 감명을 받아 저의 집 다락에 당시 카세트 녹음기 두 대를 놓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도서관을 시작하였습니다. 70년대만 해도 자원봉사자란 단어자체가 생소할 때였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걷다가 길을 가리켜주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성당에 다닐 때 초대도 받지 않았지만 젊은이들의 모임에 찾아가서 목소리 좋은 사람만 만나면 제가 녹음 도서관장이라 소개하고 낭독봉사를 요청하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자면, 당시 시내버스 안내양분의 목소리에 반해 서너 정류장을 지나칠 동안 저를 소개하고 낭독봉사 요청을 하여 봉사자가 되신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아 2년 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제대로 설비를 갖춘 녹음도서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힘은 적으나 큰일을 하려면 결국 몸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직접 체득했고, 여기에 젊음이 있었기에 다산복지재단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2009년에 경기도 여주에 헬렌켈러센터를 지어 보려고 대지를 구입하였고 후원자 여러분과, 직원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산을 깎고 샘물을 파고 드디어 지난해 연말에 헬렌켈러센터 건립건축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기로 확정되어 올해 그 첫 삽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30명의 시청각장애아동을 위해 약 300평의 건물을 짓게 될 예경입니다.
그러나 아동들을 교육시킬 기자재를 준비하고 아동들에게 헬렌켈러처럼 의사소통이 될 개별화된 교육장을 만드는 등 부대시설을 하려면 금년 정부 보조금 11억 4천만원의 건축비 지원으로는 부족함이 많으므로 저와 우리 직원들 그리고 여러 가족분들의 지혜와 노력의 땀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130여년전에 헬렌켈러여사가 많은 비장애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셨고 일본에서도 현재 동경 대학에서 시각장애인이 교수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시청각중복장애인을 행복하게 보살펴 주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산복지재단의 목표는 이러한 아동들에게 좋은 음식과 좋은 옷만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과 우리 아동들이 1차로 의사소통을 하도록 교육시키고 10년 후에는 미국이 그랬듯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존경받는 헬렌켈러와 같은 인물을 키워 내는 것입니다.
우리 시설은 언제나 부모님이나 후원자분들이 원하면 장애아동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열린 시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 들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중복장애인을 위해 전문 특수교사를 훈련시켜 투입할 것입니다.
새 아가가 탄생할 때도 엄마의 산고가 있듯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많은 진통이 따를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다산 직원 여러분,
그리고 다산복지재단과 뜻을 함께 해주시는 후원자, 자원봉사자 여러분,
우리 함께 새 역사에 동참해 봅시다.
만일 힘이 부칠 때는 같이 미쳐 봅시다.
10년 내에 여주땅에서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1월
다산복지재단 이사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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